◈ 취사공파[炊沙公派(홍천공파)] 취사공파 파조는 16세 휘(諱) 여빈(汝馪) 자 덕훈(德薰)호는 취사(炊沙) 13세 홍천공의 증손이다. 15세 휘(諱) 효신(孝信)의 둘째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 성균관전적을 역임 이조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여 서궁으로 유폐하자 비록 친모자간은 아닐지라도 계통상 엄연한 모자지간인데 폐모의 부당성을 주장한 전은소를 올리고 궐문 밖에서 3일간 복합 하였으나 임금의 뜻을 돌리지 못하자 감곡(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에 퇴거하여 인수정을 짓고 시문으로 소일하니 학덕이 높고 인품이 고매하며 壽76으로 종세하시니 사림에서 도계서원에 배향하였다. 후손들은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대구에 많아 살고 있고 전국각지에 산거하고 있다. 주손은 30세인 정선(珽善)이 10대 독자로 아들 3형제를 얻어 동하(東河), 용하(龍河), 태하(泰河)가 있다. * 취사(炊沙) = 『고생스럽게 모든일을 해도 되는 것이 없다』는 뜻과 『모래에 불을 때는것과 같다』는 뜻이다. * 인수 (因樹) = 나무에 기대어 집을 만들었다는 뜻과 숨어산다는 뜻도 있다.
◈ 20세 휘(諱) 진만(鎭萬) 자(字) : 맹능(孟能) 호(號) : 백은(白隱) 숙종(肅宗) 을묘(1675)년 12월 23일 생 영조(英租)임신(1752)년 3월 26일 졸 묘 : 녹전동 유좌(酉坐)
배 ; 진성이씨 父 유원(惟遠)
행장(行狀); 권세연(權世淵) 찬(撰). 공(公)은 용모가 준수(俊秀)하고 덕량(德量)이 넓어 일찍부터 시문(詩文)에 능했다. 사마(司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뜻이 없어 산수(山水)를 찾아 소요(逍遙)하며 경사(經史)를 탐독하며 주예(周禮)의 주소(註疏)와 주자어류(朱子語類), 육선공진의(陸宣公秦議), 대학연의(大學衍義),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요점을 뽑아내어 『대성집설(大成集說)』16권을 편찬하였다. 이눌은(李訥隱), 권창설재(權蒼雪齋), 이송사(李松沙), 황당구(黃丹邱), 이무릉(李武陵) 등 당대(當代)의 명사(名士)들과 친교(親交)를 맺었다.
◈ 백은문집(白殷文集)
유물명칭 : 백은문집(白殷文集)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나무(나무) 58점 크기 : 가로(가로) : 54 cm / 세로(세로) : 30.4 cm / 높이(높이) : 5 cm 용도/기능 : 과학기술(科學技術) / 판류(板類) // 책판(冊板)
조선 중기의 학자 이진만(李鎭萬)의 시문집. 5권 2책.목판본. 1893년(고종 30)에 친족 종보(鍾輔)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만인(李晩寅)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윤범(潤範)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88수, 권2에 만(輓) 18수, 소(疏)·서(書) 각 1편, 권3에 서(序) 11편, 기(記) 3편, 발(跋)·잠(箴) 각 1편, 상량문 5편, 권4에 제문 8편, 행장 1편, 잡저 3편이 실렸으며, 권5는 부록으로 가장·행장·묘갈명·백은당중건기(白隱堂重建記)·발 각 1편으로 이루어졌다. 시에는 자연 속에서 시와 술을 위안 삼아 사는 처사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 많다.
상소문은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사우(祠宇)를 세울 것과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을 배향한 단계서원(丹溪書院)을 훼철하지 말 것을 주장한 것이다. 서(序)에는 동지와 친목을 도모할 목적으로 결성한 세호계(世好契)·신의계(信義契)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규장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단계서원(丹溪書院)은 경상북도 봉화 지역에 있던 서원으로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171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세종과 문종 연간의 인물인 문절공 김담을 배향하고 있었다. 대원군이 집권한 후인 1871년에 조정의 명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여러 서원들이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후에 복원된 것과 달리 끝내 복구되지 못하였다. 단계서원 현판은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창시했다고 알려진 명필가 옥동 이서가 썼다.